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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과 이공의 대화...

밤은 짧고 말은 기니, 듣기에 몹시 지루하이. 도대체 지금 너의 벼슬은 무에라지.’
한다. 이공은,

‘대장(大將)이랍니다.’
했다. 허생은,

‘그렇다면 네 딴엔 나라의 믿음직한 신하로고. 내 곧 와룡선생(卧龍先生)과 같은 이를 천거할 테니 네가 임금께 여쭈어서 그의 초려(草廬)를 삼고(三顧)하게 할 수 있겠느냐.’
한다. 이공은 머리를 숙이고 한참 있다가,

‘이건 어렵사오니, 그 다음의 것을 얻어 듣고자 하옵니다.’
했다. 허생은,

‘나는 아직껏 「제이의(第二義 첫째가 아니고 다음 것)」란 배우질 못했거든.’
한다. 이공은 굳이 물었다. 허생은,

‘명(明)의 장병(將兵)은 자기네들이 일찍이 조선에 묵은 은의(恩義)가 있다 하여 그의 자손들이 많이 동으로 오지 않았나. 그리하여 그들은 모두 떠돌이 생활에 고독한 홀아비로 고생하고 있다니, 네 능히 조정에 말씀드려 종실(宗室)의 딸들을 내어 골고루 시집보내고, 김류(金瑬)와 장유(張維) 따위들의 집을 징발해서 살림살이를 차려 줄 수 있겠느냐.’
한다. 이공은 또 고개를 숙이고 한참 있다가,

‘그것도 어렵소이다.’
했다. 허생은,

‘이것두 어렵구 저것두 못한다 하니 그러고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야. 가장 쉬운 일 하나 있으니 네가 할 수 있겠느냐.’
한다. 이공은,

‘듣고자 원하옵니다.’
했다. 허생은,

‘대체로 대의(大義)를 온 천하에 외치고자 한다면, 첫째 천하의 호걸을 먼저 사귀어 맺어야 할 것이요, 남의 나라를 치고자 한다면 먼저 간첩(間諜)을 쓰지 않고서는 이룩하지 못하는 법이야. 이제 만주(滿洲 청(淸))가 갑자기 천하를 맡아서 제 아직 중국 사람과는 친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판 아닌가. 그럴 즈음 조선이 다른 나라보다 솔선적(率先的)으로 항복하였은즉 저편에서는 가장 우리를 믿어 줄 만한 사정이 아닌가. 이제 곧 그들에게 청하기를, 우리 자제들을 귀국에 보내어 학문도 배우려니와 벼슬도 하여 옛날 당(唐)ㆍ원(元)의 고사(故事)를 본받고, 나아가 장사치들의 출입까지도 금하지 말아 달라 하면 그들은 반드시 우리의 친절을 달콤하게 여겨서 환영할 테니 그제야 국내의 자제를 가려 뽑아서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혀서 지식층(知識層)은 가서 빈공과(賓貢科)에 응시하고, 세민(細民)들은 멀리 강남(江南)에 장사로 스며들어 그들의 모든 허실(虛實)을 엿보며, 그들의 호걸(豪傑)을 체결(締結)하고선 그제야 천하의 일을 꾀함직 하고 국치(國恥)를 씻을 수 있지 않겠어. 그러고는 임금을 세우되 주씨(朱氏)를 물색(物色)해도 나서지 않는다면 천하의 제후(諸侯)들을 거느려 사람을 하늘에 추천한다면, 우리나라는 잘되면 대국(大國)의 스승 노릇을 할 것이요, 그렇지 못할지라도 백구(伯舅)의 나라는 무난할 게 아냐.’
한다. 이공은 무연(憮然)히,

‘요즘 사대부(士大夫)들은 모두들 삼가 예법(禮法)을 지키는 판이어서 누가 과감하게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겠습니까.’
했다. 허생은 목소리를 높여,

‘이놈, 소위 사대부란 도대체 어떤 놈들이야. 이(彛)ㆍ맥(貊)의 땅에 태어나서 제멋대로 사대부라고 뽐내니 어찌 앙큼하지 않느냐. 바지나 저고리를 온통 희게만 하니 이는 실로 상인(喪人)의 차림이요, 머리털을 한 데 묶어서 송곳같이 찌는 것은 곧 남만(南蠻)의 방망이 상투에 불과하니, 무엇이 예법(禮法)이니 아니니 하고 뽐낼 게 있으랴. 옛날 번오기(樊於期)는 사사로운 원망을 갚기 위하여 머리 잘리기를 아끼지 않았고, 무령왕(武靈王)은 자기의 나라를 강하게 만들려고 호복(胡服) 입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거늘, 이제 너희들은 대명(大明)을 위해서 원수를 갚고자 하면서 오히려 그까짓 상투 하나를 아끼며, 또 앞으로 장차 말달리기ㆍ칼치기ㆍ창찌르기ㆍ활 튀기기ㆍ돌팔매 던지기 등에 종사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넓은 소매를 고치지 않고서 제 딴은 이게 예법이라 한단 말이냐. 내가 평생 처음으로 세 가지의 꾀를 가르쳤으되, 너는 그 중 한 가지도 하지 못하면서 네 딴에 신임받는 신하라 하니, 소위 신임 받는 신하가 겨우 이렇단 말이냐. 이런 놈은 베어 버려야 하겠군.’
하고는, 좌우(左右)를 돌아보며 칼을 찾아서 찌르려 했다. 이공은 깜짝 놀라 일어나 뒷들창을 뛰어나와 달음박질쳐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튿날 다시 찾아갔으나 허생은 벌써 집을 비우고 어디론지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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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과 이공의 대화가 삶을 살아가는데 많은 것을 암시하고있다고 생각이 든다. 누구나 어려운 상황이 닥치게 되고 고민을 해봐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해결책이 없는것이 아니고 있는데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집을 빼서 전세로 들어가기는 싫고, 연봉이 지금보다 확 깍여서 들어가길 싫고, 어린상사 밑으로 들어가기 싫다면, 이공이 삼고초려를 할 수 없고, 딸을 내어줄 수 없고, 변발을 할 수 없는 그런 이유와 같은것이다. 


그렇게 마음먹기는 쉬운일이 아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방법이 없다. 고 계속해서 고민만 해봐야 어떻게 해결이 될것인가. 자신을 버릴 수 있다면 해결책은 있다.